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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면 대아동 '독립운동기념비' 제막식

- 지난 1일 대아동(大雅洞)새마을회장 이취임식에서, 대아동 출신 독립운동가 기려..
김재학 기자dosinwow@naver.com | 2011/05/04 14:45

“祖國(조국)이 日帝(일제)의 총칼 앞에 기울어 自主獨立(자주독립)의 精氣(정기)를 하늘 높이 우뚝 세우신 獨立鬪士(독립투사)여~~ 丈夫(장부)가 世上(세상)에 태어나서 할 일이 自主獨立(자주독립)뿐이로다. 日本軍(일본군)과 맞서 싸운 獨立鬪士 頭滿江(두만강) 넘어 間島(간도) 땅에서 期約(기약)없는 風餐露宿(풍찬노숙) 나라잃은 獨立(독립) 언제 찾을고!, 남아 품은 뜻이 泰山(태산) 같도다.”(이하 생략)

양서면 증동1․2리 청계1․2리 국수1리 5개리 9개 마을기구인 ‘대아동(大雅洞)에서 건립한 독립운동기념비

양평군 양서면 증동1․2리 청계1․2리 국수1리 5개리(里) 9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마을기구인 ‘대아동(大雅洞)’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故 이기정(李起正), 故 어영해(魚泳海) 어르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에 새겨진 문구의 일부다.

 

지난 1일 ‘대아동새마을회 회장 이․취임식’을 치른 대아동 회원들은 이날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두 어르신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도 함께 가졌다.

 

마을 원로 주민들에 의하면 1891년 양서면 청계리에서 출생한 이기정 어르신과 1890년 양서면 증동리에서 출생한 어영해 어르신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소속돼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두 어르신과 성명미상(강하면 성덕리 출신)의 다른 한 분 등 모두 세 분은 3․1운동을 얼마 앞둔 1919년 초 임시정부의 명령을 받아 주민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성공적인 ‘3․1운동’을 치르기 위해 고향인 양평으로 은밀히 파견됐다.

 

양서면이 고향인 두 어르신은 당시 양평 주민들에게 조국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일제의 부당한 행위에 맞서 싸울 것을 독려했으며, 1919년 3․1운동 당일에는 주민들을 모아 면사무소(현재 양평읍 소재)를 습격하는 거사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 섰던 이기정 어르신은 무장한 일본헌병대의 총격에 의해 총알이 우측 허벅지를 관통하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며, 총상을 입은채 피를 흘린 채 도망쳤으나, 3km 정도 거리인 오빈리 부근에서 과다 출혈로 쓰러져 어영해 동지를 비롯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증동리 자택으로 옮겨졌다.

 

이기정 어르신은 일제강점기 시절 병의원을 찾을 경우, 체포될 가능성이 높아 민간요법으로만 상처를 치료해야했고 결국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를 키운 까닭에, 독립 이후인 1967년 9월 생을 마감할 때가지 총상으로 다친 다리에서 고름이 마르지 않는 등 고충이 심했다고 한다.

 

제막식에서 김선교 군수는 “일본 순사와 헌병대의 악랄하고 잔인한 민족수탈 시기에 일제에 맞설 용기를 가진 양평의 어르신들이 계셨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시퍼런 칼날 앞에서도 당당했던 어르신들을 기억하는 분들이 점점 줄어가는 시기에, 지금이라도 비석을 세워 그 활동상을 기릴 수 있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비석 제막은 대아동 원로 회원과 강호범 前대아동장이 “두 분 어르신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을 담은 문서가 소실돼 전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만큼 분명한 사실이 잊혀 사라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후세에 전하자”는 의견이 제기돼 시작됐다.

 

한편, 이기정 어르신의 직계 손자로 대아동 회원인 이범재(78) 대아노인회장과 증손자인 이정성(46) 에코저널 기자가 증동리와 양수리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김재학 기자 dosinw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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